데일리 퀴즈 · 제1호
1935년 3월 14일 목요일 · 영국 사우샘프턴을 떠나 미국 뉴욕으로 가는 배 테살리호
불빛이 펑 터졌다. 그때마다 큰 홀 천장이 하얗게 솟았다가 도로 어두워졌다. 나는 넬 브레이다. 스물여섯이고, 테살리호에서 사진을 찍는다. 이 배에 사진사는 나 하나뿐이다.
배에는 돈과 서류와 손님 일을 몽땅 맡은 사람이 있다. 다들 그를 사무장이라고 불렀다. 내 월급도 사무장이 준다.
그날 밤 내 일은 간단했다. 선장이 여는 무도회, 그러니까 다 같이 춤추는 잔치를 돌면서 사진을 찍는 것이었다. 배에서 표가 제일 비싼 방을 일등실이라고 한다. 내가 찍어야 할 사람은 그 일등실 손님들이었다. 한 장 찍을 때마다 누가 들어 있는지를 뒤에 적어 두면 됐다.
그때 사진기는 필름을 쓰지 않았다. 사진은 유리판에 찍혔다. 한 장 찍을 때마다 나무틀에서 유리판을 빼고 새것을 끼워야 했다. 무엇이 찍혔는지는 나도 몰랐다. 캄캄한 방에서 약물에 담가 봐야 그림이 떠오른다. 그 캄캄한 방을 암실이라고 한다. 그날 저녁에 나는 유리판 스물두 장을 썼다.
배는 여러 층으로 되어 있다. 사람들은 그 층을 갑판이라고 부른다. 맨 위가 구명보트를 얹어 둔 갑판이다. 그 아래로 A갑판, B갑판, C갑판이 차례로 있다.
손님들이 드나드는 방은 배 앞에서 뒤로 죽 늘어서 있다. 제일 앞이 A갑판의 편지 쓰는 방이다. 그다음이 C갑판의 진료실이다. 배 안에도 의사가 있고 진료실이 있다. 그다음이 B갑판을 통째로 쓰는 큰 홀이다. 무도회가 열리는 곳이 여기다. 맨 끝은 맨 위 갑판 뒤쪽의 카페다. 사방에 유리를 둘러서 바다가 다 보인다. 다들 유리창 카페라고 불렀다.
그래서 이 배에서 사진을 찍으려면 밤새 걸어야 한다. 배 앞쪽 A갑판의 편지 쓰는 방에서 맨 뒤 유리창 카페까지 가 보라. 배를 앞에서 뒤까지 다 걷고, 계단도 두 층을 오르내려야 한다. 짐을 내려놓고 뛰어도 사오 분이 걸린다. 그런데 치렁치렁한 잔치 옷을 입고 무도회 한복판을 뛰는 사람은 그 배에 없었다.
9시 30분에 심부름하는 아이가 나를 찾아왔다. 펜윅 부인이 부른다고 했다.
편지 쓰는 방 안쪽에는 작은 방이 하나 더 붙어 있다. 바다 쪽으로 창이 하나 나 있다. 누런 쇠 화분에 심은 커다란 야자나무가 창가 구석을 채우고 있었다. 나는 그 방을 야자나무 방이라고 불렀다.
시어도라 펜윅 부인은 예순셋이었다. 검은 비단옷을 입고 그 방 책상에 앉아 있었다. 팔꿈치 옆에는 가죽 서류 상자가 놓여 있었다. 부인은 거기에 손을 얹은 채로 나를 보았다.
"여기서 한 장 찍어 줘요. 편지 쓰는 얼굴로." 부인이 말했다.
나는 문간에 삼각대를 세웠다. 그 위에 사진기를 얹고 한 장 찍었다. 불빛이 터지자 부인이 눈을 감았다. 유리판에는 부인만 들어간 게 아니었다. 책상 위 가죽 서류 상자도, 벽시계도 같이 들어갔다. 그 옆에 걸린 소식판도 들어갔다. 소식판은 바깥세상 소식을 붙여 두는 판이다. 무선실에서 한 시간마다 새 종이를 찍어다 갈아 끼운다.
살아 있는 부인을 본 것은 그때가 마지막이었다.
10시 20분이었다. 종업원 하나가 편지 쓰는 방에서 비명을 질렀다. 야자나무 화분이 안쪽 문간을 딱 가로막고 서 있었다. 화분과 벽 사이 좁은 틈에 부인이 쓰러져 있었다. 머리 옆쪽이 깨져 있었다.
그 방에는 쇠로 만든 재떨이 기둥이 서 있었다. 사람 허리께까지 오는 것이다. 원래는 두 개가 짝을 지어 서 있었다. 그날 밤에는 하나뿐이었다.
부인의 오른손은 주먹을 쥔 채 굳어 있었다. 배에는 경찰관도 한 명 탄다. 그 경찰관이 손가락을 하나씩 폈다. 찢어진 종이 귀퉁이가 나왔다. 경마에 돈을 걸게 해 주고 빚을 받아 내는 사람이 있다. 그 사람이 보낸 빚 계산서였다. 남은 글자 사이에 이름이 하나 보였다. 줄리언 펜윅. 부인의 조카다.
사무장이 금고에서 서류를 한 장 꺼냈다. 유언장이었다. 죽은 뒤에 재산을 누구에게 줄지 미리 적어 두는 종이다. 부인은 영국을 떠나기 전에 그것을 새로 써 두었다. 다만 아직 자기 이름은 적어 넣지 않았다. 조카에게 주기로 한 몫은 동전 한 닢, 일 실링이었다. 부인은 뉴욕에 닿으면 사람들 앞에서 거기에 이름을 적을 참이었다.
경찰관이 이름을 넷 적었다. 부인의 말벗 아이리스 케틀비, 스물여덟. 말벗은 곁에서 말동무를 해 주고 돈을 받는 사람이다. 조카 줄리언 펜윅, 서른셋. 그림을 사고파는 손님 루퍼트 길더슬리브, 마흔다섯. 일등실 여자 손님 방을 맡은 승무원 해티 핀, 쉰여섯. 넷 다 그날 저녁에 부인과 이야기를 나누었다.
경찰관은 내가 저녁 식사 뒤에 찍은 유리판을 몽땅 거두어 갔다. 그러고는 아무것도 손대기 전에 그 방을 한 장 더 찍으라고 했다. 10시 35분이었다. 다 찍고 나자 경찰관은 내 암실 문 앞에 의자를 놓고 앉았다. 내가 유리판을 약물에 담그는 것을 하나하나 지켜보았다.
사진을 뽑는 일은 새벽까지 갈 참이었다. 그 전에 먼저 할 일이 있었다. 유리판 스물두 장 뒷면에 사진 속 사람 이름을 다 적어야 한다. 그건 외워서 쓰는 게 아니다. 종이를 맞대어 보고 쓰는 일이다. 그런 종이가 모이는 곳이 사무장실이다.
사무장이 종이를 넉 장 내주었다. 첫째는 분장 행렬의 차례를 적은 종이다. 무도회 중간에는 다들 우스꽝스럽게 분장하고 줄지어 도는데, 그것을 분장 행렬이라고 한다. 둘째는 승무원들이 몇 시에 일을 마쳤는지 적는 공책이다. 셋째는 배 의사가 환자를 적어 두는 공책이다. 넷째는 유리창 카페 밤 종업원이 판 것을 적는 공책이다.
나는 그 옆에 내 공책을 폈다. 사진을 몇 시 몇 분에 찍었는지 적어 둔 공책이다.
종이들이 한 시각에서 겹쳤다. 9시 50분. 행렬 사진에 적힌 시각도 그때였다. 심부름하는 아이가 쪽지 하나를 나른 시각도 그때였다. 승무원 공책에 줄을 그어 놓은 자리도 그 언저리였다. 이 종이들을 맞대면 알 수 있을 것 같았다. 그 시각에 네 사람이 배의 어디에 서 있었는지.